심리학

취업 전이라 어른 같지 않을 때 떠올려 본 장면

egoid 2026. 10. 7. 07:00

밤길을 달리는 차 안


밤길을 달리는 차 안 (사진: Unsplash)

추석에 큰집에 갔다가 작은아버지한테 "이제 어른 노릇 해야지" 소리를 들었다. 취직은 언제 하냐는 말을 돌려서 한 말이다. 웃고 넘겼는데 집에 오는 차 안에서 그 말이 계속 남더라.

스물일곱인데 아직 부모님 집에 살고, 서류는 넣는 족족 떨어진다. 나도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잘 안 든다. 붙으면 그때부터 어른이겠지, 하고 미뤄 둔 채로 지냈다.

그럼 어른이 되는 기준이 취직이 맞을까? 미국 심리학자 아넷이 대학생과 이십 대 수백 명에게 이걸 물은 적이 있다. 어른이라고 하려면 뭐가 갖춰져야 하는지 마흔 개쯤 되는 항목을 보여 주고, 하나씩 필요한지 아닌지 고르게 했다.

졸업이나 결혼, 취직 같은 일은 대부분이 어른의 기준으로 안 골랐다. 삼십 년쯤 전 미국 젊은이들한테 생각을 물은 거라, 지금 한국에서 물으면 취직이 훨씬 위로 올라올지도 모른다.

그러니 그 답을 내 답으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. 대신 질문만 가져왔다. 나는 뭘 보고 누구를 어른이라고 하나?

밤에 들여다본 휴대폰


밤에 들여다본 휴대폰 (사진: Unsplash)

떠올려 본 장면

메모장에 '저 사람 어른이네' 싶었던 장면을 떠올리는 대로 적었다. 둘에서 더 안 나왔다.

먼저 떠오른 건 회사 다니는 대학 선배다. 첫 월급을 받고 원룸을 얻어 나가서 냉장고 채우는 것부터 관리비까지 혼자 하더라. 월급이 있어서 된 장면이라 지금 나한테는 멀다.

그다음이 같은 스터디에 있던 형이다. 집에서 다들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할 때 형은 "그건 안 할게요" 하고, 왜 안 하는지까지 말했다고 했다. 그때 형도 백수였는데. 형은 올봄에 붙었으니, 내가 그 장면을 어른스럽게 기억하는 게 그 뒤에 붙어서일 수도 있다.

메모에 회사 장면만 나왔다면 나는 그 장면들을 그대로 두고, 붙는 날을 어른 되는 날로 계속 셌을 거다.

내 메모에는 형 장면이 하나 섞여 있었다. 거기서 지금 해 볼 수 있는 건 속으로 정해 둔 걸 이유까지 붙여 입 밖으로 꺼내 보는 것 정도였다.

저녁 식탁


저녁 식탁 (사진: Unsplash)

마침 지난주에 엄마가 또 공무원 얘기를 꺼냈다. 평소 같았으면 "생각해 볼게" 하고 방으로 들어갔을 거다. 이번엔 "작년에 반년 해 봤잖아. 법 조문 외우는 공부가 나랑 안 맞았어. 그래서 사무직 공고 넣는 거야" 하고 말했다.

새로 정한 건 없다. 속으로만 정해 둔 걸 처음 엄마 앞에서 꺼냈을 뿐이다. 엄마는 한숨을 쉬었고, 그래도 그날은 더 안 묻더라.

그래서 붙었나. 아직이다. 공고는 원래 넣던 대로 넣고 있고, 광탈도 그대로 이어지는 중이다. 작은아버지 말은 아직 좀 따끔하다.

다음 명절에 같은 소리를 들으면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다. 선배 장면은 아직 멀리 있다. 다만 어른이 되는 날을 합격 문자 오는 날 하나로만 세는 건 그만뒀다.

출처: Arnett(아넷), "Young people's conceptions of the transition to adulthood", Youth & Society 29권 1호(1997), 3-23쪽.